배우 박해준은 격정보다 정적에서 빛나는 배우다.
배우 박해준은 격렬한 감정보다 침묵을 더 잘 연기하는 배우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장면의 온도를 바꾼다. 그의 연기는 종종 생활의 결, 혹은 감정의 여백을 따라 흐른다. 그가 맡은 캐릭터들은 늘 갈등의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고, 그 균열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복잡함과 불완전함을 목격하게 된다.
그가 선택한 작품들은 대체로 ‘인간의 민낯’을 다루고 있으며, 이는 배우 박해준이 가진 연기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아래는 그의 대표작 5편을 통해 살펴본 배우 박해준의 연기적 궤적이다.
<미생> (2014, tvN)
Platform: tvN / 감독: 김원석 / 출연: 임시완, 이성민, 박해준 외
역할: 마석율 부장
한줄평: 조직 속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복잡한 대답
“그 사람, 나쁜 상사 같지만 이상하게 미워할 수 없어.”
<미생> 속 마석율 부장은 그 자체로 ‘회사’라는 공간의 상징이다.
권위적이고 불합리해 보이지만, 어딘가 짠하고 애잔하다.
박해준은 이 복잡한 얼굴을 정교하게 짜 맞춘다.
무심한 듯 냉소적인 말투, 예민한 시선, 그러나 위기 앞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나서는 묘한 책임감.
그는 ‘미생’의 풍경 안에서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직장인을 대변한다.
“저런 상사... 나도 있었는데” 혹은
“내가 지금 저런 상사인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현실적인 인물이다.

TVN 미생 캡처

TVN 미생 캡처

TVN 미생 캡처
<부부의 세계> (2020, JTBC)
Platform: JTBC / 감독: 모완일 / 출연: 김희애, 박해준, 한소희
역할: 이태오
한줄평: 증오 속에서도 이해를 부르는 역설의 캐릭터
박해준을 대중적 얼굴로 각인시킨 가장 강렬한 작품.
이태오는 단순한 ‘불륜남’이 아니다. 그는 욕망의 결핍이 만든 괴물,
그리고 사랑을 증명받고 싶어 안달 난 아이 같은 남자다.
박해준은 이 인물을 비열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그 안에 깃든 무력감과 질투, 자격지심을 한 겹씩 벗겨낸다.
그래서 이태오를 향한 시청자의 분노는 끝내 씁쓸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나도 행복하고 싶었다고.”
이 대사는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뻔뻔하면서도 슬픈 변명 중 하나였다.
박해준은 그 변명을 이기적이지 않게, 오히려 필사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태오를 미워하다가도, 우리는 어쩌다 한 번쯤 그를 이해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독전> (2018, 영화)
Platform: 넷플릭스, 극장 / 감독: 이해영 / 출연: 조진웅, 류준열, 박해준 외
역할: 선창
한줄평: 거칠고 광기 어린 세계 속에서 터져나온 ‘조용한 광기’
<독전>에서 박해준은 극 중 마약 조직의 실세인 ‘선창’ 역을 맡았다.
이 인물은 폭력과 불안, 그리고 생존 본능이 뒤섞인 남자다.
그는 한 마디의 대사 없이도 위협적인 기류를 풍기고,
폭발 직전의 침묵 속에서 잔혹함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한다.
특히 폐허 같은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총격 장면,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광기, 그리고 슬픈 체념이 담겨 있다.
선창은 악인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이 세계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박해준은 이 이중성을 무너짐 없이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독전>은 박해준이 장르물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배우라는 걸 입증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독전

영화 독전
🎬 <서울의 봄> (2023, 영화)
Platform: 넷플릭스, 극장 / 감독: 김성수 / 출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역할: 전두광 측근 참모
한줄평: 소리 없는 권력의 기척, 그 뒷면의 연기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정치 드라마다.
이 영화에서 박해준은 실명은 아니지만,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군부 핵심 참모로 등장한다.
총칼도 없이, 고함도 없이, 그는 조용히 권력의 톱니를 돌린다.
어디서도 튀지 않지만, 그의 존재만으로 장면은 긴장감으로 무겁다.
그의 말투는 단정하지만 감정이 없고, 눈빛은 또렷하지만 의도가 읽히지 않는다.
박해준은 이런 ‘사무적인 공포’를 정밀하게 연기해낸다.
<서울의 봄> 속 그는 바로 권력이란 이름의 괴물의 숨겨진 안면이며,
정치적 현실주의가 낳은 냉혹한 상징이다.


<폭삭 속았수다> (2025, 넷플릭스)
폭삭 속았수다는 그냥 포스터로 글을 마친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그는 스타보다 연기자에 가깝다.
화려한 조명보다는 그늘진 골목,
드라마틱한 절정보다는 미세한 표정 변화.
박해준이라는 배우는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는 늘,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감정들이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