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국 인텔은 그냥 인텔이 아니었다. 인텔은 언제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였다. 그런 인텔이 이제는 ‘인텔 에브리웨어(Intel Everywhere)’를 부르짖고 있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 기기에 인텔 칩을 넣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 최신호는 인텔이 컴퓨터를 넘어 통신과 가전분야로 시장 영역을 확대하는, 35년 역사상 가장 야심찬 도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올해 64세인 인텔의 CEO 크레이그 배럿이 이처럼 ‘마지막 배팅’에 나설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디지털 융합’이 지금 IT업계의 최대 화두이자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IT업계에서 디지털 컨버전스(융합)는 ‘유비쿼터스’ 만큼이나 중요한, 절대로 몰라서는 안되는 개념이 되었다. 언론은 물론 IT 전문가조차 디지털 컨버전스란 개념에 생소할 때였다. 당시 한 언론이 ‘디지털 컨버전스는 음성 데이터 영상 등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돼 사용이 편리해지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라고 설명을 달았을 만큼 이에 대해 무지했다. 융합이 변화를 주도한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하버드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데이비드 요피(David Yoffie)교수가 쓴 책 ‘디지털 융합 시대의 경쟁(Competing in the Age of Digital Convergence·하바드대 비즈니스 스쿨, 1997)’에서 그 개념이 처음 나왔다. 데이비드 요피 교수는 이 책에서 창조적 결합(Creative Combina-tion)을 컨버전스 환경의 으뜸가는 전략으로 꼽으면서 창조적 결합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그 무엇을 창조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기술발전이 새로운 니즈 창출 전통적으로 새로운 기기의 발명과 이로 인한 문명의 탄생은 소비자들의 요구(needs)에서 출발한다.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해서 신제품이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전제품 진화의 역사는 그 자체가 가정주부들의 욕망사(慾望史)이다. 누가 밥을 대신 해주었으면, 빨래를 대신 해주었으면, 청소를 대신 해주었으면, 설거지를 대신 해주었으면 하는 욕구의 구현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전기밥솥, 세탁기, 진공청소기(청소로봇), 식기세척기이다. 융합의 블랙홀 현실화 이같은 문명 생성의 역전 현상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신제품은 항상 소비자들의 욕구보다 앞서 달려가면서 새로운 욕구를 창출하기 때문에,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신제품의 트렌드를 쫓아가기 매우 어렵게 된다. 다시 말해 디지털 문명의 수혜에 있어 격차가 생겨날 수밖에 없고, 이는 정보격차와 마찬가지로 매우 심각한 역기능을 가져오는 것이다. 공유와 나눔이 진정한 디지털 웰빙 이렇게 모든 것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또 변해간다. 일반 사람들은 각종 디지털 문명의 가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헉헉거릴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의 인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리는 ‘5:95의 사회’에서 격차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따라서 정보격차와 디지털 격차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자고.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를 선진 문명사회로 인정하지 않듯 정보에 뒤쳐진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사회를 디지털 문명사회라고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 격차를 그냥 두고 보는 것은 작금의 디지털 컨버전스가 추구하는 참 웰빙의 모습이 아니다. 국가경쟁력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크나큰 손해를 자초하는 길이다. 진정한 ‘디지털 웰빙’은 역시 공유와 나눔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출처 : 경영과 컴퓨터[2004년 4월호] |